본문 바로가기
인생책

BBC Space Race documentary

by 서양의 지혜 2020. 3. 29.

이번에는 영국 BBC에서 제작한 documentary "Space Race"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Episode 1 :  Race for Rockets  https://www.youtube.com/watch?v=xcLphSY8PX0

Episode 2 :  Race for Satellites  https://www.youtube.com/watch?v=kefm18yAFco

Episode 3 :  Race for Survival  https://www.youtube.com/watch?v=UxTf-kWbYk4

Episode 4 :  Race for The Moon  https://www.youtube.com/watch?v=wZI8uLCsjlU

 

 

이 다큐멘타리는 20세기 초 "우주 여행"을 꿈꾸었던 '폰 브라운(1912-1977)'과 '코룔료프(1906-1966)'의 인생과 경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폰 브라운과 코룔료프, 이 두 사람은 아주 어릴 때부터 "우주 여행"을 꿈꾸었는 데 특이한 점은 그걸 평생의 과업으로 진짜 실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이 두 사람이 20대였던 1930년대에는 제트비행기는 커녕 나무로 만든 프로펠러 비행기가 날라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2차대전이 발발한 직후 독일을 폭격하러 영국을 떠났던 영국 폭격기는 항법계산을 잘못해 한참 헤맨다음 엉뚱하게 영국을 독일로 착각해서 영국을 폭격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일어났었습니다. 그 당시 항공공학의 수준이 그 정도였는 데 그 시절에 우주여행을 진짜로 성공시키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폰 브라운과 코룔료프는 온갖 고난을 겪지만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룹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정말 파란 만장합니다. 이 BBC 다큐드라마는 그 과정을 다룬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폰 브라운이나 코롤료프나 실패를 밥먹듯이 했고 특히 코룔료프는 스탈린 치하에서 발사실패에 대한 책임과 모함으로 강제수용소에 갔다 왔고 그 후에도 발사에 또 실패하면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 가야 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기술로 우주여행을 실현한다는 것은 큰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에도 코룔료프는1957년 세계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하고 1961년 인류를 우주로 보냈으며 폰 브라운은 1969년 최초의 달착륙을 성공시킵니다.

 

Episode I Race for Rocket. : 2차대전이 막바지에 달한 1944년 나찌 독일은 런던을 향해 계속 V2 로켓을 쏘아 보냅니다. 당시 미국과 영국 첩보부는 V2로켓을 분석한 후 당시 미국 영국의 로켓기술보다 최소한 25년은 앞선 것이라 판단하고 그 로켓기술 그리고 특히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있는 (Brain behind all these) von braun을 생포하려고 작전을 시작합니다. 미국은 이 로켓 기술과 원자폭탄을 결합시키면 전무후무한 무기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소련도 역시 이 로켓의 중요성을 알고 로켓기술과 폰 브라운을 선점하기 위해 혈안이 됩니다. 폰 브라운은 어릴 때 극장에서 달세계로의 여행 (The woman in the moon)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고 우주여행을 평생에 걸쳐 달성해야 할 일생의 과업으로 마음속에 깊이 새깁니다. 폰 브라운은 로켓공학에 두각을 나타냈고 신무기가 필요했던 나찌당은 폰 브라운에게 연구비를 주면서 포섭합니다. 역시 연구비가 필요했던 폰 브라운 역시 나찌에 협력하며 페네뮨데에서 V2 로켓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당시 폭죽에나 쓰던 수준의 로켓 기술을 갑자기 탄도미사일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은 대단히 험난했습니다. 발사한 로켓이 과열로 수도 없이 폭발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생냉각이란 기발한 방식을 발명합니다. 그리고 발사한 로켓이 계속 지그재그로 날라가다 엉뚱한 곳으로 가버리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지금은 컴퓨터로 자동제어를 하겠지만 컴퓨터가 없던 당시 자이로스코프를 이용한 기계식 자동제어장치를 발명했습니다.

한 편 당시 소련에도 우주여행을 주장했던 치올코프스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역시 우주여행을 일생의 과업으로 깊이 새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코롤료프입니다. 코롤료프 역시 항공공학과 로켓공학에 두각을 나타내지만 스탈린 시절 모함을 받아 시베리아로 추방되고 심한 고문 속에 이빨이 모두 부러지는 고난을 당합니다. 전쟁말기 상황은 아주 급박하게 돌아가서 완전히 미쳐버린 나찌는 폰 브라운과 로켓공학자들을 연합군에 넘겨주는 대신 모두 죽이려고 합니다. 폰 브라운은 간신히 미군으로 탈출하고 폰 브라운을 확보하는데 실패한 소련의 NKVD는 스탈린에게 책임추궁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폰브라운을 대신할 로켓공학자를 찾다가 숙청당해 시베리아에 있는 코룔료프를 부랴부랴 데려옵니다. 1945년 8월 미국이 원폭을 일본에 투하하자 스탈린은 이제 미국이 원자폭탄과 폰브라운을 모두 가졌다는 것에 대해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코룔료프를 심하게 닥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당시 소련(러시아)의 기술 수준으로 V2 로켓을 재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실패할 때마다 스탈린이 대노하고 코룔료프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코룔료프는 드디어 V2로켓의 사정거리를 2배로 늘린 신형로켓을 만들어 극적으로 성공합니다. 그동안 코룔료프의 능력을 확인한 스탈린과 NKVD는 만약 미국이 코룔료프를 암살하면 이렇게 힘들게 확보한 로켓기술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코룔료프는 이미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그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극비로 합니다. 그래서 코룔료프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금지되고 단순히 "Chief Designer"로만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 documentary는 너무나 재미있어서 꼭 보시길 권합니다. 

Werhner von Braun
인류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가가린과 소련 우주개발의 아버지 세르게이 코롤료프

이 다류멘타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 컨트롤 타워의 중요성 : 폰 브라운은 컴퓨터도 없던 시절, 전자제어도 없이 V2 로켓을 만들었습니다. 그 전까지 쓰던 로켓은 기껏해야 폭죽놀이나 하는 수준이었는데 정말 제대로 된 로켓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정말 어마어마한 기술적 난제에 부딛혔습니다. 그건 코롤료프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런 치열한 경쟁과 노력을 통해 마침내 1960년대 기술로 인간을 달로 보냈습니다.
  • 그러나 2020년인 지금은 인간을 달로 보내지 못 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이 인간을 달로 보내기 위해 개발하고 있는 SLS로켓은 1960년대 폰 브라운이 만든 새턴5보다 별 나은 게 없는데 자그마치 60년이 더 진보된 현재의 기술로도 완성을 못 해 빌빌거리고 있습니다. 그럼 그 옛날 새턴5를 다시 만들면 되지 않냐고요? 그렇게 못 합니다. 왜냐하면 그 새턴5로켓에 들어가던 부속을 만들던 회사들은 지금은 모두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 그럼 왜 60년대는 해냈는 데 기술이 훨씬 더 발전한 지금은 못 하는가?  그 이유는 '폰 브라운'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강력한 의지를 가진 컨트롤 타워가 없기때문입니다. 이건 러시아도 마찬가지인데 코룔료프가 1960년대에 만든 소유즈 로켓을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아야 된다. : 너무 흔해 식상한 말이지만 이 두 사람 만큼 실패를 많이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람도 드물 것이라 생각합니다. 폰 브라운은 처음엔 나찌와 히틀러의 질책 속에 엄청나게 많은 실패를 반복하며 V2 로켓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새턴 5로켓을 만들때도 엔진의 combustion instability 문제때문에 정말 문자그대로 실패를 밥 먹듯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폰 브라운의 강력한 지도력으로 끝내 해냅니다. 코룔료프는 한 수 더 뜨는 데 실패할 때 마다 한 번만 더 실패하면 시베리아로 보내버리겠다는 스탈린과 KGB의 협박에 시달려야 했고 정작 코룔표프가 로켓개발에 성공한 뒤에는 미국이 코룔료프를 암살할 까봐 코룔료프의 존재 자체를 비밀로 했습니다. 그 바람에 코룔료프의 어머니는 코룔료프가 죽은 줄 알고 살았습니다. 

KGB가 감시하는 가운데 코룔료프가 개발한 로켓이 공중에서 폭발하는 장면. KGB는 이 사실을 즉각 스탈린에게 보고했고 스탈린은 한 번만 더 실패하면 시베리아로 보내라고 했다고 합니다. 

누구나 어릴적에는 큰 꿈이나 또는 거창한 꿈을 꾸지만 어른이 되면서 현실인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폰 브라운과 코룔료프는 평생에 걸쳐 '우주여행'을 꿈꾸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발버둥쳤습니다. 그리고 이 폰 브라운과 코룔료프 모두 로켓의 detail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폰 브라운의 지휘하에 로켓을 개발했던 엔지니어들은 이구동성으로 폰브라운이 아주 세부적인 내용까지 상세히 알고 있고 해결책을 척척 제시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폰브라운은 독일에서 히틀러나 고위나치 관료를 상대했고 미국에선 케네디 대통령같은 고위급을 상대로 연구비를 따오고 실제 개발은 아주 큰 방향만 정해줄줄 알았는데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건 코롤료프도 마찬가지여서 스탈린, KGB, 후르시쵸프, 소련군 고위장성들을 상대로 연구비를 따오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나 로켓개발의 실무도 아주 자세히 알고 있었고 세부적인 내용마저도 문제가 생기면 직접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 모두 우주여행을 가능케 하기 위해 밑의 연구자들과 엔지니어들에게 당대의 기술을 뛰어넘을 것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물론 폰 브라운과 코룔료프가 직접 로켓의 설계 도면을 그리거나 만들지는 않았지만 여러 관련팀들을 모아 세부적인 부분까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서 이런 전무후무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 미국에선 스페이스x를 제외하고는 로켓개발이 달팽이가 기어가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런 강력한 컨트롤 타워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Biology나 의과학 연구 모두 molecular biology, medicine, bioinformatics, biochemistry등의 여러 영역이 합쳐 진행되는 Big Science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폰 브라운이나 코룔료프같이 여러 연구팀을 하나로 묶어 조율하는 강력한 컨트롤 타워의 중요성이 Biology에서도 갑자기 커지고 있습니다.